로로피아나의 역사에 관하여
로로피아나 가문은 이탈리아 트리베로 지역에서 19세기 초 양모 상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20세기 초 이탈라이 중심부 쿼로나(Quarona)에 양모 방적 공장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1924년, 엔지니어 피에트로 로로 피아나(Pietro Loro Piana)는 마참에 로로피아나 & C.(Loro Piana & C.)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피에트로의 손자인 프랑코 로로 피아나(Franco Loro Piana)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 고품질 직물을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로로피아나는 프랑코의 아들인 세로지오(Sergio)와 피어 루이지 로로 피아나(Pier Luigi Loro Piana)의 감독하에, 고급 울과 캐시미어를 포함한 최고 품질의 패브릭 개발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세르지오 로로피아나는 각 소재의 기능에 맞는 디자인을 맡은 제품 전문가였고, 그의 동생 피에르 루이지는 안데스 산맥과 몽골의 초원을 누비며, 섬유에 대한 깊은 탐험을 하였습니다. 6대에 걸쳐 섬유에 대해 파고든 로로피아나 가문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궁극의 섬유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사업 다각화를 시작한 로로피아나는 첫 RTW(Ready to wear) 컬렉션을 위한 조직을 구성하였습니다. 이후 2006년에는 인테리어 디비전도 설립하였습니다. 2013년에 LVMH(Moët Hennessy Louis Vuitton)가 로로 피아나의 지분을 80% 인수하여 대주주가 되었으며, 2017년에는 회사의 지분을 추가로 5% 더 인수하였습니다. 2021년에는 LVMH는 로로 피아나의 새로운 CEO로 디올의 여성, 남성, 아동복 사업을 맡았던 데미안 베르트랑(Damien Bertrand)이 선임하였습니다. 2022년부터 밀라노 브레라(Milan's Brera district) 지역의 코르틸레 델라 세타(Cortile della Seta)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최상의 소재를 찾는 섬유의 탐험가
비쿠냐(Vicu˜na)는 현재 로로피아나가 사유 자연보호 구역을 지정해 지켜내고 있는 낙타과 동물입니다. 안데스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비큐냐는 사육이 불가능하며, 한 마리의 서식지로 약 3천 평이 넘는 땅이 필요로 합니다. 섬세한 털을 가지고 있어 ‘안데스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성한 동물이었지만, 1960년대에 멸종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비쿠냐를 보호하기 위해 페루 정부와 로로피아나는 섬유를 얻은 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후 5년만에 개체수가 2배로 불어나고, 2008년에 로로피아나는 6백만 평이 넘는 땅을 구입해 비쿠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메리노 울(Merino wool)은 스페인에서 ‘왕의 선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하게 다뤄졌습니다. 1700년대 후반에 호주에 소개된 메리노 양은 이후 자연환경이 잘 맞아 주요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 주로 서식하고 있는 메리노 양 중 로로피아나는 선별된 1천여 마리의 양에서 채집한 양모를 가공합니다. 이렇게 얻어진 메리노 울은 특유의 카네이션 향이 나며, 캐시미어보다 가늘고 비쿠냐 만큼 가볍습니다. 매년 호주에서 최고의 울을 선정하는 경매(레코드 오브 베일, Record of Bale)가 이루어지는데 이중 가장 우수하게 선정된 월드 레코드 베일의 전량을 로로피아나가 구매하고 있습니다.
로로피아나 브랜드 명성
LVHM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와 그의 아들인 앙투안 아르노(Antoine Arnault)의 여름 전통은 이탈리아의 호사로운 휴양지 포르토피노(Portofino)의 로로피아나 매장에 들러 폴로 셔츠와 스웨터를 고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캐시미어, 비쿠냐, 메리노 울 등 고급 직물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품질 보존의 노력으로 로로피아나는 별도의 마케팅이나 로고 플레이 없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1990년 카프리 섬, 칸, 베버리힐스, 포르토피노 등 상류층의 럭셔리한 휴양지 등에 주요 매장을 열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소재와 품질에만 집중하였습니다. 2013년 LVMH가 로로피아나에게 80% 지분을 인수할 당시 가문의 요청은 스타 디자이너를 데리고 오지 말고, 오로지 품질로만 브랜드를 이어가겠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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