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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리처드 로저스, 세계 스카이 라인을 바꾼 명장

by Savoir Faire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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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pidou Centre, Paris, Design by Richard Rogers

리처드 로저스 바웰리즘의 시작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1933-2021)1933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1939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엡솜 예술학교, 지금의 런던 예술대학교에서 파운데이션 과정과 런던 AA스쿨을 거치며 건축가의 길에 발을 디뎠습니다. AA스쿨을 졸업한 후에 1962년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Fullbright Scholarship, 외국인의 미국 대학원 유학을 지원하는 미국 정부 장학금)의 지원으로 예일 대학교 건축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훗날 그와 더불어 하이테크 건축의 대명사가 된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도 이 시기에 만났습니다.

 

학업을 마친 후 영국으로 돌아온 리처드 로저스는 수 브럼웰(Su Brumwell), 노먼 포스터, 웬디 치즈맨(Wendy Cheesman)과 함께 팀포(Team 4)를 결성했습니다. 팀포는 1967년 해체되었으나 로저스는 다양한 작업들을 통해 꾸준히 구조 기법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1971년 렌조 피아노(Renzo Piano)와 협업해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Centre Georges-Pompidou) 설계에 당선되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계단실, 엘리베이터, 설비 덕트 등의 서비스 공간을 외부로 노출시킨 파격적인 디자인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공장같다고 생각하며 이 건물이 장소와 용도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처음으로 탈피한 중요한 건물로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하이테크의 건축의 장을 열었습니다.

 

영국 현대 건축사의 금자탑을 쌓은 리처드 로저스의 작품들

 1978년 논란의 퐁피두센터가 준공된 다음 해에 리처드 로저스는 런던의 로이드 빌딩(Lloyd's Building)의 설계를 시작합니다. 결과물은 퐁피두 센터의 런던 버전으로 불리며 구조적 표현주의, 바웰리즘(Bowellism)의 대표작으로 불립니다. 건물의 뼈대들이 다 드러나고 몸 속의 장기들을 밖으로 꺼내 놓은 것 같은 인사이드아웃 빌딩입니다. 1986년 빌딩 완공이후 2011년 로이즈 빌딩은 1등급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지정 당시 등록문화재 가운데 가장 새로 지어진 건물로 히스토릭 잉글랜드(Historic England, 영국 역사 건물 및 기념물 위원회)현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건물 중 하나로 널리 인식된다”고 평했습니다.

 

영국 런던 남동부 그리니치 반도의 세계 최대의 돔, 밀레니엄 돔(Millennium Dome, 1999)도 그의 작품이다. 찰스 왕세자는 천막 위에 삐죽삐죽 솟은 구조물을 보며 혹평하였지만 1991년 영국 왕실로부터 현대 건축에 미친 영향을 높게 평가받아 기사 작위를 받아 ()’ 되었습니다.

 

세계 10 건축물로 손꼽히는 영국 히드로 공항은 리처드 로저스 파트너쉽(Richard Rogers Partnership, RSHP) 수석 디자이너들리 설계하였습니다. 히드로 터미널 5 2008 개장한 영국에서 가장 단독 건물입니다. 이후 스페인의 1 공항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Adolfo Suárez Madrid–Barajas Airport, 2005), 뉴욕 맨하튼의 3 월드 트레이드 센터(Three World Trade Center, 2018) 세계 각지에 랜드마크를 설계하였습니다. 작년에는 여의도 파크원 타워(2020) 완공하며 그의 활동 반경을 넓혔습니다.

 

2007년에 제 31회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였을 때 당시 심사단은 리처드 로저스는 기계로서의 건물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수행해왔고, 이를 통해 건축적인 투명함, 공공영역과 사적 영역의 통합, 사용자의 급변하는 요구에 부응하는 유연한 계획 등을 보여주었다.” 평하기도 했습니다.

 

40여 년간 건축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리처드 로저스는 2020년 설계 일선에서 물러나 뉴욕 현대 미술관 명예 이사, 몽드 메디컬 재단 이사 등을 맡으며, 더 나은 도시와 건축을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 왔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했던 그는 건축은 한 사람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일이다. 때문에 내 모든 작업의 핵심은 언제나 협업이었다. 수학과 공학부터 사회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머리를 맞댈 때,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상징과 미학을 갖춘 시대정신이 반영된 해법을 찾을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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