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 하디드, 건축가 삶으로의 시작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건축에 관심있는 경제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건축박람회도 자주 방문하고, 집에 건축가가 자주 방문한 영향으로 일찍이 건축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후 스위스 영국, 레바논 등에서 공부하며,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Beirut American University, Lebanon)에서 수학을 전공하였습니다. 1972년 AA스쿨(Architectural Association)에서 건축 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스승이기도 한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OMA)에서 엘리아 젱겔리스(Elia Zenghelis)와 함께 실무를 익혔습니다. OMA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파트너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자신만의 건축을 하고 싶어 1980년 건축사무소를 차립니다.
역사에 남은 위대한 해체주의 건축가
AA스쿨 재학 당시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i)와 파울 클레(Paul Klee)의 영향을 받아 해체주의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 홍콩 피크(The Peak, Hong Kong) 설계 공모전에서 유니크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당선되었지만 컴퓨터 공학적 계산의 도움을 받지 못해 구현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그녀의 대담하고 현실을 뛰어 넘는 설계 때문에 건축물 없는 건축가 ‘종이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한동안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초기 작업들은 모서리들이 유연한 형식으로 바뀌면서 벽들과 바닥, 천정들이 섞이고 확장되어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유기적인 구조가 되었습니다. 최첨단 컴퓨터 프로그램이 뒷받침되는 구조와 시공기술의 조화로 그녀의 특유의 파격적이면서 부드럽게 부유하는 역동적인 공간을 보여주었습니다.
1994년 비트라 소방서(Vitra Fire Station, Germany)는 그녀의 첫 완공 작품입니다. 스위스 유명 가구 회사 비트라 공장에서 큰 불이나 회사 스스로 세운 소방서입니다. 그녀의 특징인 비대칭 구조가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2011년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Guangzhou Opera House, China)는 하나의 오페라 강당을 만들기 위해 5년을 노력한 결과, 비평가자들도 극찬하는 전세계 10위 안에 드는 오페라 하우스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강물에 닳은 두개의 조약돌처럼 모양을 한 오페라 하우스는 강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서있습니다. 삼각형 골조가 건물의 주된 뼈대를 이루고 외벽을 통해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였습니다. 공연장 내부는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이음새 없는 표면을 연출하기 위해 유리섬유 보강 콘크리트로 마무리했습니다. 공연장 조명은 은하수의 별들에서 영감 받아 디자인하였고,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는 건축물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국내에서 자하 하디드는 2014년 오픈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로 유명합니다. “환유의 풍경”(Metonymic Landscape)이라는 이름으로 당선된 작품은 사선과 사면, 곡선과 곡면까지 사용하면서 모더니즘의 근간인 카테시안(Cartersian)의 이론을 붕괴시킨 설계였습니다. 기존의 2D 도면 설계방식으로 구현할 수 없었던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설계를 위해 서울시, 서울디자인재단, 삼성물산은 한국의 순수 기술을 활용해 3차원 입체설계 방식인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을 도입시켰습니다. 일반적인 건축물은 사전검토를 위해서 BIM 기법을 건축물 외벽과 같은 일부분에 대해서만 적용시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DDP는 초기 공정부터 건축구조, 인테리어마감, 그리고 MEP(Mechanical Electrical Plumbing 기계전기배관), 조경부분까지 모든 공정에서 BIM을 적용한 실질적인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4년 자하 하디드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 건축사가 되었습니다. 자하 하디드는 2016년 65세라는 이른 나이에 심장발작으로 이른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건축 세계에 유리천장을 깨며, 끊임없이 한계를 넘어선 그녀의 노력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많은 제약과 편견 속에서도 형식과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색을 밀고 나간 그녀 덕분에 건축의 디지털 역사도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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