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시작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1867년 미국 위스콘신주(State of Wisconsin)에서 태어나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에 입학하였으나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학비에 부담을 느낀 아버지와의 불화로 아버지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되고 고학으로 졸업하였습니다.
1887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근대 건축의 선구자인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의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현대건축이라는 것이 막 태동했을 무렵이기에 프랭크 라이트는 고전적인 근대 건축에 몰두했습니다. 위스콘신주 근교의 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며 대도시보다 교외지역을 선호했던 그는 당시 주류 건축인 보자르(Beaux-arts) 스타일(고전적 그리스 로마 건축을 르네상스 아이디어와 결합시켜 탄생시킨 유럽풍의 신고전주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 고전적, 반 유럽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자연주의 신념가
그의 건축 철학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자세에서 미국 특유의 광대한 초원이라는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대초원 주택 양식을 만들어냈습니다. 대초원 대표적 양식으로는 수평성이 강하며, 미국의 끝없는 지평선과 어울립니다. 공간 구성은 중앙의 굴뚝을 중심으로 십자 형태이며, 벽들이 완벽하게 막혀 있지 않아 방들이 흐르듯 연결되어 유기적인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유기적 건축은 형식을 피한 다기보다는 본능적인 프로세스의 산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건축가의 주된 영감은 그 대지의 여건과 재료의 본질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939년 프랭크 라이트는 그의 후원자였던 에드거 카프만(Edgar Jonas Kaufmann)을 위한 여름 별장인 낙수장(Fallingwater)을 설계하였습니다. 폭포 위에 지어진 이 저택은 그의 자연주의적 신념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인문학적인 면에서 시적인 표현을 이룩한 건축으로 21세기가 된 지금도 가장 높게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이 저택은 프레이리 양식(Prairie Style)으로 비대칭성과 공간의 연결, 수평성을 갖춰 자연과 하나 되게 하는 자연 친화적인 방식입니다.
그의 화려한 건축계의 업적과 다르게 과격한 생애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여섯 명의 아이들과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유럽으로 도피하는 과정에서 그는 "결혼은 인간의 굴레가 아니다. 사람이 개인적 자유와 결혼 생활의 노예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전자를 선택해야 한다. 간통은 세상과 맞서는 진실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1914년 그의 주택 겸 작업실 애리조나 주의 탈리에신 웨스트(Taliesin West)에서 내연녀와 아이들이 도끼로 살해되고 방화까지 일으키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복구 자금을 위해 맡은 작업이 도쿄 제국 호텔입니다. 당시 내진 설계로 인해 과도한 돈과 시간을 비판을 받았지만, 도쿄 관동대지진 당시 건재한 제국호텔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세계유산 건축물의 구겐하임의 건축가
미국의 미술품 수집가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솔로몬 R. 구겐하임(Solomon Robert Guggenheim)은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 전시를 위해 미술관 설립을 의뢰하였습니다. 195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은 그의 최후의 작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미술관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로 시작된 설계는 달팽이처럼 건물 자체가 나선형으로 내려오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건축에서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평평한 바닥’의 패러다임을 바꾼 설계는 계단 없이 건물 전체가 연결되며, 바닥과 벽, 천장이 함께 흘러가는 유기적인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에 가까운 라이트의 기존 건축과는 달린 구겐하임 미술관은 표현주의 건축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특징적인 외관이 돋보입니다. 고대 지구라트(Ziggurat) 신전에서 모티브를 딴 이 건물은 벽이 휘어 있어 그림을 걸 수 있겠냐는 비판도 있다고 합니다. 미술관의 경사진 바닥으로 인해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감상 없이 지나가게 되므로 건축물 자체가 아티스트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라이트는 도시와 기계를 찬양하며 효율을 주장했던 르 코르뷔지에와 여려 면에서 비교됩니다. 라이트는 자연을 찬양하고, 장인적이고 맞춤형 생산에 의한 다양성을 강조했습니다. 라이트의 작품이 부풀려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구겐하임 뮤지엄은 뉴욕시가 지정한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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