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 해체주의 건축의 대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는 1929년 폴란드 계 유대인 이미자의 후손으로 캐나다에서 태어났습니다. 16세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는데,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이고 다양함이 혼재된 이곳의 분위기가 그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LA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하며, LA시티 컬리지를 다니다가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로 편입하여 건축학사를 받고 졸업했습니다. 이후 하버드 GSD(Harvard Graduate School of Design)에서 도시 계획을 공부하다가 도중에 LA로 돌아왔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빅터 그루엔 설계사무소(Victor Gruen Associates)에서 근무하며 가구를 제작하며 돈벌이를 했습니다. 카드보드와 섬유보드로 만든 이지 에지스(Easy Edges) 의자가 대표적입니다. 이때 번 돈으로 산타모니카에 있는 기존의 벙갈로 같은 허름한 주택을 개조하며 자신의 집을 꾸몄습니다. 기존 건물을 놔두고 철제 골판, 철망 펜스, 마감하지 않은 목재들로 새 건물로 둘러싸며 집을 꾸몄습니다.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그를 훗날 ‘예술가와 같은 건축가’로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프랭크 게리 주요 건축물들
그의 대표작으로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 Spain, 1997)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빌바오는 제철소, 광산, 조선소 등이 즐비 했던 공업 도시로, 1980년대 철강산업이 쇠퇴하며 도시의 기능이 침체되었습니다. 1991년 바스크 지방정부는 빌바오의 몰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화산업이라고 판단하고,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였습니다. 7년여간의 설계 기간을 가진 미술관은 티타늄 소재를 적용한 은빛 외관과 물 위에 뜬 한 척의 배를 연상시키는 조형미 있는 디자인으로 스페인 빌바오를 문화도시이자 0순위 관광도시로 성장시킨 주역이 되었습니다.
2003년 완공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Walt Disney Concert Hall, LA)은 여러 기록적인 숫자를 남긴 건축물입니다. 1987년 월트 디즈니의 부인인 릴리언 디즈니(Lillian Disney)가 남편의 뜻에 따라 콘서트홀을 지어 달라며 LA시에 5,999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722억) 기부하며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듬해 프랭크 게리가 건축가로 선정되었고, 1991년에 최종 설계안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파격적인 디자인과 불경기, 1992년 LA 흑인폭동으로 프로젝트는 답보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7년뒤 1999년 12월에 착공되었고, 디즈니 재단의 추가 기부금 1억 달러(약 1,200억)에 월트 디즈니사가 보탠 2,500만 달러(약 3001억)이 더해져 총 건축비 27,400만 달러(3,300억)로 건축물이 완성되었습니다.
곡면의 디자인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닮아 있는 콘서트홀은 장미꽃이 피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대부분 무광택의 매트한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지만, Founders Room과 어린이 원형극장은 고광택 패널을 적용했는데, 이 때문에 수많은 클레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햇볕이 사방으로 반사되며 건축물 주변의 온도를 높였고, 빛 반사로 다른 빌딩에 있는 사람들, 운전자들도 앞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LA의 맑은 날씨를 고려하지 않은 자재 선택으로 인해, 결국 프로그램을 통해 햇볕 반사가 심한 외벽 부위를 찾아 마모 시켰다고 합니다.
콘서트홀 내부는 기계장치로 증폭하지 않아도 악기 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목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음의 고른 확산 반사를 고려하여 계단식의 경사진 모양으로 홀의 천장을 구성하였으며, 외부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부터 차단하여, 홀 위에서 헬리콥터가 비행해도 공연이나 녹화에 지장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2008년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유지하였으나, 일부 건축가들의 비판도 더러 있습니다. 그가 지은 많은 건축물이 설계적 문제를 무시하고 독특하고 뒤틀린 외양에만 집착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실제로 일부 건물들은 물이 새거나, 금이 발생했다고 하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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