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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이탈리아 관능적인 아름다움의 브랜드, 베르사체(Versace)

by Savoir Faire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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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ACE LOGO

지오반니 베르사체의 성장 배경

지오반니 베르사체(Giovanni Maria Versace)1946년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레조디칼라브리아(Reggio Calabria)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밀라노의 유적이 많이 있는 도시에서 자란 베르사체는 고대 그리스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수료하지 않은 베르사체였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에 관해 배웠습니다. 봉제업을 영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베르사체는 26세에 밀라노로 이주하며 패션산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3 27세가 되던 베르사체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제니(Genny)Byblos 라인의 디자이너가 되며 1977년 실험적 라인인 Complice의 디자이너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이 론칭시키며,첫 여성 컬렉션인 Palazzo Della Permanmente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1978년 첫 매장을 밀라노에 오픈하였습니다.

 

베르사체 브랜드의 시작

첫 매장을 오픈 한 후, 베르사체의 대담한 색채와 화려한 프린트 등은 패션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컬렉션은 고전미와 섹시함의 조합이라며 수많은 극찬과 함께 비판도 함께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라이벌이라고 주목받았던 조르지오 아르마니 스타일과 비교받았는데,아르마니의 옷은 아내에게, 베르사체의 옷은 정부에게라고 표현했습니다.

같은 해,베르사체는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의 형 산토(Santo Versace)는 사장으로, 여동생 도나텔라(Donatella)는 부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4남매 중 막내였던 도나텔라는 베르사체의 뮤즈로의 역할을 하며 패션계에 입문하였습니다. 베르사체는 도나텔라의 향수 라인과 그녀의 레이블인 베르수스(Versus)를 만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녀의 전 남편이자 모델인 폴 벡(Paul Beck)은 남성복 디렉터로 활동하였습니다.

 

베르사체의 고유의 디자인과 시그니처 아이템

베르사체가 1982년에 발표한 고운 쇠사슬 원단의 메탈 메시(metallic소재 오로톤(Oroton)은 그의 시그니쳐 작품이 되었습니다. 중세 시대 갑옷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소재의 무게감으로 인체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포인트였습니다. 이 소재는 베르사체를 대표하는 소재로 인식되며 베르사체의 테일러링 경험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은 베르사체는 브랜드 로고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메두사의 머리가 있는 의미는 베르사체의 아이템을 보면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하겠다는 의도와 강렬한 인상을 줘 돌처럼 굳게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는 앤디워홀(Andy Warhol)에게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91년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와 제임스 딘(James Dean)의 얼굴이 그려진 이브닝드레스는 앤디 워홀 팝 아트의 화려한 컬러감의 정점을 보여줬습니다. 베르사체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앤디 워홀은 컬렉션 프린팅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르사체 별세 이후 브랜드의 성장

지아니 베르사체가 50세였던 1997, 그는 마이애미 자택 앞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습니다. 범인 앤드류 쿠내넌(Andrew Cunanan)은 집 앞 카페를 들린 베르사체의 머리에 총을 쏘아 살해하였습니다.그는 베르사체 총격 전에도 4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었습니다. 살해 8일 후 범인은 자살하여 베르사체와의 관계, 범행 동기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생전 범인은 자신이 베르사체의 가까운 지인이라고 자랑했다고 하는데, 그는 리플리 증후군(현실을 부정하며, 본인이 만든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을 앓고 있었다고 밝혀졌습니다.

 

지아니 베르사체가 살해당한 이후, 브랜드의 인기는 추락하였고, 그의 가족들은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총력을 가했습니다. 형 산토가 경영을 여동상 도나텔라가 디자인을 맡아 회사 운영을 하였지만, 자금난에 허덕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베르사체 CEO인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Gian Giacomo Ferraris)를 만나며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베르사체의 핵심 키워드에 맞춘 사업구조, 인력, 영업 방식을 개편하며, 적자 기업을 7년 만에 두배로 성장시켰습니다. 베르사체의 관능적이면서 다채로운 고유의 디자인 DNA를 부각시키기 위해 디자인과 제품 개발 인력을 감원시키지 않고, 재무 개선을 집중하였습니다. 무분별하게 있던 라이선스 사업을 정리하고, 지분 60%를 보유하던 홈데코 부문은 지분을 모두 인수해 자체 생산체제로 전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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